건강

보호자 없는 병원 <일산병원>

기쁜맘09 2016. 4. 23. 21:05

[간호사가 간병까지 하는 일산병원… "김치 냄새도 사라져"]

24시간 돌봐주고 운동도 시켜줘
하루 2만원… 경제적 부담 줄어… 간호 인력 확보가 가장 큰 과제

"서로 못 할 짓이더라고요."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심한 간경화로 4년 전부터 병원 신세를 졌다는 김민수(가명·53)씨는 옛일을 떠올리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몸이 망가진 뒤 가족은 '(문병 가서) 한 번이라도 더 봐야지' 했을 거고, 내 입장에선 미안하고…." 눈까지 노래지는 황달 증세에다 종종 의식을 잃는 간성 뇌증까지 보이던 그를 1년여 전부터 주로 돌봐준 이는 가족이 아니라 간호사들이다. 간호사가 환자를 24시간 돌보고 간간이 휠체어 태워 산책까지 시켜주는 '보호자 없는 병원'(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이 시행된 덕이다. 그는 "이게 정말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관절운동 기계를 이용해 이달 초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김영애씨의 근력 운동을 돕고 있다. 김씨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덕에 간병인을 두지 않고 가족에게도 폐를 덜 끼쳐 참 좋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중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마음의 짐, 경제적 부담을 지게 했던 병실 문화를 바꿀 단초가 마련됐다. 가족이나 전문 간병인 없이 간호사가 입원 환자를 간병해주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가 이달부터 확대 시행됐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인천 길병원, 충북대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 2곳과 을지대병원, 동국대 일산병원 등 종합병원 8곳 등 총 14개 병원에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며 "이로써 지난달 전국 병원 134곳에서 148곳으로 서비스가 확대됐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하는 병원을 올해 말까지 400곳으로 늘리고, 2018년부터는 전체 의료 기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김치 냄새부터 사라졌다"

본지 취재진이 찾은 일산병원에서는 2013년 7월부터 이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간호사들은 장터 같던 병실이 위생적으로 바뀐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홍나숙(44) 일산병원 수간호사는 "간병인·보호자들이 먹으려고 냉장고를 꽉 채우던 냉동 밥과 반찬이 싹 사라지고 소독약 냄새보다 진하게 풍겼던 김치 냄새부터 사라졌다"고 했다. 전문 간호 인력이 환자를 돌보니 낙상과 욕창이 각각 19%, 75% 주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2014년 10월 고려대 의대 김현정 교수팀)도 나왔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일산병원 5층 복도에선 조지선(48) 수간호사와 서연수(26) 간호사가 8일 전 오른쪽 인공 관절 수술을 한 김영애(65)씨 환자복 바지 허리춤을 꽉 잡고 부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천천히, 천천히…. 너무 빨리 발을 내딛지 마시고요." 수술 뒤 다리 근육을 다시 만드느라 두 시간씩 보행 운동시키는 일은 예전엔 대부분 환자 보호자나 간병인 몫이었다. 그러나 이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이 맡는다. 이 병원에서 다리 수술한 송욱자(70)씨 역시 "여기 간호사들은 '화장실 가고 싶으냐'고 먼저 물어온다"며 "가족 없어도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었다. 그간 개인 간병인을 쓰면 하루 7만~9만원을 줘야 했다. 그러나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도입한 병원에선 기존 입원료에다 1만~2만원 정도만 더 내면 된다. 환자들은 "간병인들이 병세 심한 환자를 만나면 공공연히 웃돈을 요구하고 가족이 지켜보지 않을 땐 소홀히 하는 경우도 간혹 있어 마음 상했는데 이런 불만도 사라졌다"고 했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많아"

그러나 이 서비스가 2018년 전체 의료 기관으로 확대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잖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보호자는 환영하지만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시행하려면 간호 인력이 병원마다 2배 정도 늘어야 해 각 병원 입장에선 충분한 간호 인력 확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간호사들이 선호하는 대형 수도권 병원에만 몰리는 쏠림 현상이 일어나 지방 중소 병원 간호사 수급난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실제 올해 이 서비스를 시작한 경북 A병원은 "대학별 취업 설명회까지 하며 간호사를 겨우 채웠지만 앞으로 간호 인력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지방 B병원은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시행하는 병동 위주로 간호사를 채우다 보니 이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는 병동엔 간호사 수급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복지부는 간호 인력 수급 문제를 우선 해결하기 위해 간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한 병원(간호 등급 3등급 이상)부터 1~2개 병동씩 단계적으로 시행해 서비스 시행 초기 혼란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또 간호대 입학 정원도 매년 늘려 간호 인력을 더 양성하고, 이른바 '장롱 면허'를 가진 유휴 간호사의 재취업을 유도하기 위해 작년 9월부터 '간호 인력 취업 교육센터'를 전국에 6곳 두고 교육시키고 있다.

이창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빠른 고령화 추세에다 여성 직장인도 늘어 간병 부담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라며 "메르스 이후 지적된 후진적 간병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가 확대되도록 적극 유도하고 초기 시행착오를 빨리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