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와 그밖에

<달란트 비유>

기쁜맘09 2016. 8. 10. 07:36



달란트 비유 마태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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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에 대해서 살펴 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달란트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란트 비유는 천국의 성질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하나로써 갑작스럽게 임할지도 모르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므로 당연히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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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란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고 외국으로 간 주인은 주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타국에 갈 때라는 말은 사실 주께서 이 땅을 떠나셔서 곧 천국으로 갈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국으로 간다는 말은 영어성경에서는 여행을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간다는 말은 갔다가 돌아 온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자기 소유를 맡겼다고 할 때의 자기 소유는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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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외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는 게 좀 억지 같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유대인들이 매우 잘 알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고대 앗수르나 이집트에서는 부자나 귀족이 자신의 소유를 종에게 맡기고 일정한 기간 후에 원금과 이자를 취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소유를 맡아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한 종은 원금과 이자를 주인에게 반환하고 나머지를 수고비 조로 받았습니다. 이 비유를 읽는 이들은 이러한 관습에 대해서 매우 잘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관리하도록 자기의 소유를 종에게 맡긴 것은 당연하게도 자기의 재산을 증식시킬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왜냐면 종은 주인의 기대 이상으로 증식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를 받는 종은 많은 종들 가운데서 재산증식의 귀재로 뽑힌 우수한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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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종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의 것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는 주인의 것이기 때문에 그가 가진 것 역시 주인의 것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종에게 자기의 소유를 맡겨서 종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특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아무에게나 자기의 소유를 맡길 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멍청한 종 때문에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남에게 맡길 때는 미리 잘 알아보고 재산을 증식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때에야 만이 맡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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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에 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씩을 맡겼습니다. 사실 당시는 은본위 사회였기 때문에 금이 아닐 것입니다. 즉 한역의 이란 말은 원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은전)으로서 노동자 20년 품삯입니다. 그러면 다섯 달란트는 무려 백년 품삯이란 말입니다. 이렇게나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겨우 세명의 종밖에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종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 그 중에서 자기의 기준을 충족시킨 세명을 선발해서 각각 재산을 맡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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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재능대로란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인은 임의대로 선정해서 돈을 갈라 준게 아닙니다. 나름대로 선정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재능입니다. 종이 재산을 제대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주인으로부터 많은 달란트를 받으려면 우리가 가진 재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그 재능이 문자적으로 돈버는 재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비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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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재능은 주님이 주시지 않나요?

당연히 재능도 주가 주시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는 재능을 주시고 그 재능을 키우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재능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요? 재능은 활용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기도할수록 기도의 힘은 더 커집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신묘한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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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 부분은 우리가 매우 잘 압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겨서 총 열 달란트가 되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역시 그 두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해서 총 네 달란트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고르고 고른 자들 답습니다. 이들은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맡은 자는 가서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답니다. 왜 그는 다른 종들처럼 그것을 자본삼아서 장사를 하지 않고 땅에다 묻어 두었을까요? 그 역시 재능대로 한 달란트를 받은 겁니다.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었다면 아예 재산을 맡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돈이 너무 작아서 그걸 가지고는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어서?

여러분, 한 달란트라고 해서 작은 액수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 성인남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는 무려 6000데나리온입니다. 즉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20년치 품삯이라는 말입니다. 엄청난 거금입니다. 장사하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종은 그 돈으로 장사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그가 주인에게 섭섭했고 그래서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주면서 자기에게는 한 달란트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섭섭했던 것입니다. 종에게 장사의 재능이 없는게 아니라 종에게는 교만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것에 대해서 남들보다 알로 취급된 것에 대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을 향한 충성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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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시면 가서라고 한 부분이 보이시지요? 18절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여기에서 사용된 가서16절의 가서와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원문 상으로는 16절의 가서자신의 길을 가거나 출발한다는 의미지만 18절의 가서어떤 사람으로부터 떠나 버리는 즉 등을 들려 떠나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왜 나는 한 달란트밖에 안주느냐?’ ‘내가 저 사람들보다 못한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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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들 중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은 안계신가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재능들을 선물로 받아서 큰 일을 하고 폼나게 사는데 나는 겨우 이거 받아가지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별로 쓸모도 없고 그래서 빛도 나지 않고 .... 내가 저들보다 못한게 뭐야?

이런 섭섭한 마음을 가진 분은 안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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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달란트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두 종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까 상대방과 비교를 해 보고 적다고 하는 것이지 자기가 받은 것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는 액수입니다. 받은게 적어서 큰 일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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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인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한 종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과는 왜 비교하지 않습니까? 그런 이들과 비교해서 자기의 처지가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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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이 지나고 외국에 갔던 주인이 돌아와서 자기의 재산을 맡긴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고 주인이 돌아온 것을 가지고 학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제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늦어질 것을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종들과 결산을 하는 것은 최후의 심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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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첫 번째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은 아주 자랑스럽게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표준 원문에는 보소서앞에 내가 그것들에 근거하여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감안하여 해석하면 제가 주인님이 준 것에 근거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제가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주인님이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길 만큼 유능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주인에게 그 공을 돌리는 겸손함까지 보입니다. 주님이 다섯 달란트를 줄 종으로 뽑은 사람답습니다. 재주도 있고 충성스러우며 겸손하기까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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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첫 번째 종을 칭찬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두 달란트 맡겼던 종도 와서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남겼다고 보고합니다. 주인은 역시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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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종은 분명 이익금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니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액수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무려 두배 반입니다. 이익금으로 치면 세 달란트 무려 노동자 60년 품삯입니다. 그런데 칭찬하는 내용은 똑 같습니다. 보상도 똑 같습니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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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여러분

만일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이 한 달란트의 이익밖에 얻지 못했더라도 주인은 똑 같이 칭찬하고 동일한 보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적은 것으로 받은 것 같아도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 하찮게 보여서 그것을 사장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보상과 칭찬은 이익의 액수하고 상관이 없고 충분히 최선을 다했는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나 두 달란트 받았던 자나 모두 100%의 이익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똑 같습니다. 그래서 칭찬도 보상도 똑 같은 것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했기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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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새롭게 느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가운데 이런게 있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무역을 해서 무려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은 솔직히 굉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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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한번 따져 볼까요? 노동자 품삯의 백년치 이익을 남겼다면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칭찬하시면서 주님은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합니다. 아니 우리는 그걸 엄청나게 큰 일로 생각하는데 주님은 그게 적은 일이랍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은 결코 비꼬는게 아닙니다.

다음을 보세요.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맡긴답니다.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남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중요한 일을 맡긴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네가 맡을 일에 비하면 이건 비교도 안될 만큼 작고 사소한 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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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한 달란트를 맡았더라도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가 동일하게 적은 일입니다. 주께서 이 다음에 우리에게 맡길 일에 비해서는 모두 다 작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비교해서 네께 크니 내께 크니하지 주님은 그 모든 것을 동일하게 적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똑 같은 정말 글자 한자 틀리지 않은 칭찬과 보상을 하십니다. 그런데 불평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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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렇게 많은 것으로 맡기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노동자 이십년 품삯이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다만 앞의 두 종과 비교해서 적게 보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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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적은 것으로 투자해서 적게 남길 수 있어서 시간의 여유도 나고 삶을 즐길 수도 있어서 너무 좋다이렇게 생각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월급은 적어도 칼퇴근도 가능하고 여유도 있어서 공무원이 좋아!’ 정도 일까요? 다섯 달란트를 투자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기려면 얼마나 열심히, 많이 일해야 했겠습니까? 삶의 여유는 있었을까요? 너무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면 인생이 허무한 법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맡기신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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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잘살고 적당히 즐길 여유도 있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때요? 저는 한 달란트 맡은 자가 이런 발상의 전환을 했다면 참 좋았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과 결산할 때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다른 두 종과 경쟁관계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함께 주인의 재산을 불리는 동역자라고 생각했다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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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돈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뭔가 굉장히 정중한 것 같은데 내용은 주인을 폄하하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이익을 전혀 내지 못한데 대한 변명을 주인 탓으로 시작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강퍅하고 완악하며 거칠고 매서운이란 뜻입니다. 주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종이 과연 있을까요? 이 종은 지금 주인을 인정머리는 전혀 없고 종에게 적게 투자하고 많이 거두려고 채찍질하는 무섭고도 무자비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굉장한 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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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종은 주인에 대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유대의 속담으로 투자는 하지 않고 불로소득만을 얻으려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인에게 지금 이 종은 겨우 눈꼽만큼 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주인이 자기에게 적게 투자한게 잘못이랍니다. 주인이 자기를 알아 주지 않은 것이 잘못이랍니다. 그래서 종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그대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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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합니다. 전혀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 종의 항변은 오늘 우리 성도들의 민낯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표현하기가 좀 그래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적게 주신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좀 더 나에게 많이 주셨다면 나도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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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았으므로라는 말은 내가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는 말입니다. 즉 종은 주인에 대해서 옛날부터 잔혹무비하며 완악한 악덕 주인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려웠답니다. 혹시 주인이 준 돈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인이 그렇게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이라면 종은 지금 주인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종의 묘사대로 주인이 잔인하고 인색하며 완악하고 강퍅하다면 주인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하고 항변하는 종을 벌써 치도곤을 내고 모든 것을 빼앗고 쫓아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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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종은 한 달란트를 주인에게 주면서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걸 의미를 감안해서 다시 해석한다면 이런 투가 됩니다.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종은 정말 굉장합니다. 말로는 두렵다고 했지만 실제로 종이 하는 행동과 말을 보면 주인과 맞먹겠다는 걸로 들립니다. 주인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잘못은 주인에게 돌리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항변합니다.

이런 종이 있다면 마구 야단을 치고 때려주고 싶겠지요?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맡은 종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게으름과 나태를 모두 주인의 탓으로 돌리고 나에게 겨우 한 달란트밖에 주지 않음에 대해서 분노하며 섭섭해 합니다. 그리고 주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주인에게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입으로 불평만하지 전혀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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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말은 이렇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성된 종하고는 정말 반대되는 말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악하고란 말은 도덕적으로 사악한이란 말이며 또한 고통과 괴로움을 불러 일으키는이란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자기의 행동으로 주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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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속해서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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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녕 나를 완악하고 인색하며 잔인한 사람으로 알았다면 왜 내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받을 수 있게 하지 않았느냐란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끼리는 돈을 빌려 주고 받더라고 이자를 받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이방인들에게는 이자를 받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8%-48%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렇네요. 주인이 얼마만에 돌아 왔는지는 몰라도 이자만 제대로 받았더라도 주인의 달란트가 제법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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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이 종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는 어떻게든 책임을 면하려고 변명에 급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은 그 종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책임을 맡았다면 그리고 달란트를 받았다면 우리는 적어도 해야 할 최저한의 노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 선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은 것은 여건이 받쳐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인이 섭섭하고 주인에게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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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을 직시 하세요. 우리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하고 비교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정 비교할려면 자기보다 높은 곳과 비교하지 말고 낮은 곳과 비교하세요. 내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만해도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왜 불평하나요? 전혀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6000데나리온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고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걸 가지고 할 게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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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판결을 다소 의외입니다.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자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게 단순히 돈 이야기라면 예수님은 요즘 말하는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것 같지요.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달란트를 우리의 재능이나 노력이라고 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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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바로 이 상황을 보고 한 말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 자에게 하늘도 감동해서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계속해서 사용하면 더 크게 개발된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크게 주셔서 내가 여유있게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다보면 그게 개발이 되고 발전이 되며 결국은 더 좋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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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어진 최후의 판결은 바로 이겁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주가 주신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고 사장하는 자에게 주께서 내리는 최후의 선고는 바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에 참예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깥 어두운 데는 지옥을 말합니다. 즉 무익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은 누구 말처럼 개털모자를 쓰고 주인의 잔치 자리에 부끄러운 참여를 하는게 아니라 지옥으로 가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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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끊임없이 살펴야 하고 항상 기도해야 하며 노력하고 주어진 은사를 잘 개발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개발하고 활용하려면 사실은 주어진 은사를 보다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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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은사가 있다면 기도를

봉사의 은사가 있다면 봉사를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면 가르치는 것을

말씀의 은사가 있다면 말씀을 보다 열심히 할 것입니다. 남들에게 말씀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병자를 낫게 하는 일은 정말 보기에 멋집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그런 것을 주시지 않았는지 야속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사람들 앞에서 폼나는 일을 하는데 나는 부엌에서 일만 한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교회의 건덕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회중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다면 누군가 식사를 준비하는 이도 필요합니다. 누군가 기도로 병자를 낫게하는 일을 한다면 누군가는 아버지의 집을 깨끗이 하는 사람도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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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의 높낮이를 따지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 다음에 우리에게 맡기실 일에 비하면 한없이 적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어진 은사에 높고 낮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눈에는 다 같습니다. 보상도 같고 칭찬도 같으니까 너무 앙앙불락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로 협력하여 선을 아룬다고 보완하고 정교하게 합쳐질 수 있도록 이것 저것을 다양하게 알아서 주십니다. 그것이 합쳐져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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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주어진 은사를 사장하고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며 나를 더 알아 주지 않는다고 주님에게 반감을 품는다면 정말 곤란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눈에 약간은 높고 낮음과 중요하고 덜 중요해 보이는 것들, 또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들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아직 인생의 경주가 끝난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경주는 합격과 불합격이 있는 것이지 일등 이등으로 나뉘어서 차별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경쟁자가 아니라 지체이며 동역자이고 교회는 사교모임이나 기업이 아니라 운명 공동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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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주가 나에게 이것을 맡기셨다면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남을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어진 재능을 사장시키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결국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안그래도 적게 주었다고 생각되는 것조차도 가지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나라에서도 쫓겨남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입니다. 주는 우리에게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처음부터 그렇게 만드셨기에 우리는 충분히 어떤 일에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직 그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뭘 잘하는지, 남들보다 잘하는 것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게 뭔지를 한번 살펴보세요. 그게 나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재능입니다. 그가 나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것을 개발하고 그것을 더 많이 사용하고 그러면 됩니다.

큰 일을 감당해야 되는데 너무 적은 일을 맡기셔서 하기가 싫습니까?

너무 시피해서 너무 창피해서 하기가 꺼져집니까?

꾹 참고 지금 일에 충성하십시오. 머쟎아 결산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더 크고 놀라운 것으로 나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그것을 개발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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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라는 칭찬과 보상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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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란트 비유|작성자 lord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