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학업 중단율 등 최저수준 초등학생 독서량 年 80권 달해… 학부모가 학교 와 책 읽어주기도 - 샌안토니오 학력 올린 '독서 친구' CEO 등 지역사회 리더 3000명이 초등 2~3학년과 짝꿍돼 책읽어줘… 읽기시험 합격률 60→74%로 뛰어
"책 읽기를 배우는 것은 불을 피우는 것과 같다. 제대로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불꽃이 된다." ㅡ빅토르 위고
지난달 4일 미국 텍사스주(州) 샌안토니오시(市) 저소득층 지역에 위치한 호손(Hawthorne) 초등학교. 3학년 루디 라미레스(9)가 학교 도서관에 들어서자 백발의 백인 여성이 활짝 웃으며 그를 맞았다. 미국 통신사 AT&T의 기술 변호사 모린 맥니스(60)였다. "한 주 동안 잘 지냈니, 루디?"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변호사와 멕시코계 이민자 가정 소년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은 없어 보이지만, 맥니스는 루디의 '리딩 버디(reading buddy·독서 친구)'다. 맥니스는 지난 6개월간 매주 금요일 점심 시간에 학교로 찾아와 루디와 책을 읽었다. 부모님이 영어를 못해 가정에서 읽기 교육을 받지 못했던 루디는 이제야 제 나이 수준의 책을 읽을 수 있다. 루디는 "어른이 책을 읽어준 것은 처음"이라며 "읽기 과목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맥니스는 이날 점심 시간을 쪼개 학생 2명에게 책을 읽어주고 오후 2시가 다 돼 회사로 돌아갔다.
◇샌안토니오 저소득층 학력 끌어올린 '독서 친구'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은 샌안토니오시에는 맥니스처럼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초등학교 2~3학년 학생과 매주 함께 책을 읽는 '리딩 버디'가 3000명 있다. 부시장, 시경(市警)청장, 기업 CEO 등 지역 사회 리더들이 자원한다. 평일 근무시간에 짬을 내 활동한다. 리딩 버디는 2010년 당시 줄리언 카스트로 시장(현 국토부 장관)이 "2020년까지 초등 3학년 읽기 시험 합격률이 85%를 넘도록 하라"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지금은 비영리 시민단체 'SA2020'이 학생과 자원봉사자를 매칭해주는 일을 맡고 있다.
초등 2~3학년을 대상으로 한 것은, 3학년 때 읽기 능력을 완성하지 못하면 갈수록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학교 적응이 떨어져 결국 고교 중퇴, 대학 진학 실패 등 후유증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에모타디 SA2020 국장은 "초등 2학년까지는 읽는 법을 배우는(learn to read) 단계지만 3학년부터는 배우기 위해 읽는(read to learn) 단계"라고 말했다.
2011년 샌안토니오 초등 3학년의 읽기 시험 합격률은 60%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74%에 달한다. 이 도시는 2020년까지 당초 목표인 합격률 85%를 넘어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독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대구 아침 독서 운동 10년의 기적
우리나라에도 지난 10년간 학생들 책 읽히기에 꾸준히 공을 들이는 도시가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 10분, 대구 대진초교에 "지금부터 아침 독서 시간입니다"라는 교내 방송이 나오자 어수선했던 학교가 조용해졌다. 전교생 750명이 조용히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펴들고 20분간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독서다짐장'에 책 제목과 느낀 점을 딱 한 줄만 쓴다. "재미없었다"고 써도 괜찮다. 과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수록 독서 급수가 올라간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학부모가 찾아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대구 시내 초·중·고교 453곳에서는 매일 아침 전교생이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05년 대구교육청이 수업 시작 전 10분간 책을 읽는 '아침 독서 10분 운동'을 시작했다. 기본 원칙은 4가지다. ▲모두가 읽는다 ▲매일 읽는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읽기만 한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독후감 쓰기가 싫어 책을 기피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에 따라, 독후 활동의 부담감을 없애고 책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대구교육청의 독서 실험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치르는 국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대구의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전국 3.9%였는데, 대구는 1.7%였다. 전국 평균 학업 중단율이 5.79%인 데 반해 대구는 0.5%다. 인터넷 과다 사용 학생 비율 역시 전국 평균(7.44%)의 4분의 1(1.82%) 수준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대구 초등
학생들은 학교 도서관에서만 1인당 79.7권을 빌려 봤다. 우리나라 어른 10명 중 3.5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저학년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기른 지금 대구 학생들은 공부도 잘하고 글쓰기나 토론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아침 독서 10분 운동은 경북·경남 등 다른 시·도 교육청으로도 퍼져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