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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원인

기쁜맘09 2019. 4. 23. 23:16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베를린 장벽을 흔히 공산주의 동독과 자유주의 서독을 가르는 긴 장벽이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베를린 장벽은 동독내에 위치하던 수도 베를린, 그 중에서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가르던 장벽이었습니다.

독일의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얄타회담에 의해 독일은 4개 국가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가 점령하게 되었는데

수도였던 베를린이 가진 역사와 의미가 워낙 컸기 때문에 베를린도 4개로 분할 되었죠.




서베를린은 프랑스, 영국, 미국이 동베를린은 소련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베를린은 이념으로 단절된 2개의 도시가 되어버렸었죠.


비유를 들자면 북한에 있는 평양의 반을 우리나라에서 관리하는 형국입니다.



당연히 공산주의 체제의 동베를린보다 자유주의 서베를린이 경제적으로 앞서기 시작했고


서베를린으로의 이주민들이 많아지자 '베를린 장벽'을 서베를린에 세우게 된것입니다.





점점 증축, 보강을 해나가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이유는 사실 영화처럼 극적입니다.


동독 사람들은 언론자유화, 서독으로의 여행개방을 주제로 매주 시위를 벌이고 있었는데


1989년 11월 9일 동독 지도부에선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여행자유화 정책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게 됩니다.




동서독 국경을 통한 입출국 허용 및 행정절차 간소화, 여권 발급 기간 단축 등이 이 기자회견에서 발표되었는데


한 이탈리아 기자가 던진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되느냐?" 라는 질문에 동베를린 총서기 권터 샤보프스키가


"지연 없이 지금부터 바로" 라고 대답해버립니다. 사실 권터 샤보프스키는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회견을 했기 때문에


여행자유화 정책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러한 실수를 한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독일어가 서툴렀던 저 이탈리아 기자가 '여행 자유화 정책'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착각하고


전보를 보내는 엄청난 오보를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이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베를린 시민들이 장벽으로 몰려들어 장벽을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에 몰려든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독에서도 이를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이러한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1990년 10월 독일은 공식적으로 동독과 서독간의 통일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경제체계와 공산주의 경제체계의 대립을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


이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아직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