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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의사서 ‘깡패들의 아버지’로 :박보영 목사

기쁜맘09 2017. 2. 13. 19:44



1997년 어느 겨울 밤. 경기 안성의 11평짜리 아파트에 3인조 강도가 들었다. 밤 1시 기도를 끝내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던 목사님의 배와 목에 강도 세명이 칼을 들이댄 것이었다. 한데 이상했다. 목사님의 마음이 왠지 편안해졌다.

“날 찌르시오. 빨리 좋은 곳으로 가게.” 일촉즉발의 순간. 일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서슬퍼런 강도들이 하나 둘씩 칼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박보영 목사(51·안성 감리교 시온성교회)가 전과자·불량배들과 살게 된 이유다.

▲박보영 목사     ©경향신문 김대영 기자

◇깡패들의 아버지=당시 전도사 직분으로 개척교회(시온성교회)를 세운 뒤 하루종일 선교하러 다녔던 박목사였다.

“바로 저에게 칼을 들이댄 강도들과 그들이 끌고 온 ‘안성의 조폭’들이 시온성교회 첫 신도였어요. 그때처럼 감격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후 박목사는 항상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열다섯명 정도의 ‘버림받은 이들’과 살았다. 라면 하나에 한솥가득 물을 끓여 국물만 먹기 일쑤였다. 가난하고 추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다시 도둑질하고 교도소로 갔다. 아이들은 “아빠(박목사), 나쁜 짓 안하고 살려니 너무 배고프네요. 일한 돈으로 고기와 쌀을 사올게요”라 써놓곤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박목사는 기도하고 면회가는 게 하루 일과였다.

교회는 간혹 피투성이가 됐다. 형사들이 들이닥쳐 때로는 난투극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모양이니 신도들이 교회를 찾겠는가. “어떤 친구는 제가 설교할 때 바로 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힙합바지 언제 사줄거야’하며 예배시간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지요. 또 제 와이셔츠와 신발을 훔쳐가는 통에 속옷만 입고 예배를 인도한 적도 있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본드흡입을 했던 아이는 지금 어엿한 신학대학생이 됐다.

◇돈잘버는 의사=박목사는 잘나가는 의사였다. 의대(중앙대) 졸업 후 서울과 안양에서 피부과 전문의로 병원을 개업했다. 조부가 감리교 성자로 꼽히는 고 박용익 목사이고 부친은 인천기도원 ‘마가의 다락방’을 세운 박장원 목사. 그러나 박목사는 세속의 달콤함에 묻혀 살았다. 골프도 싱글수준을 넘어선 프로선수의 경지. 도무지 부러운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달콤함은 종착역에 다다랐다.

부인과 헤어졌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끝내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입원했다. 결국 병원도 문을 닫았다. 1년여 투병생활을 하던 90년 어느 겨울날 ‘마가의 다락방’에 놀러간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신세한탄을 하러 갔는데 어머님 품처럼 편안하더군요. 그런데 눈을 감은 몇초 동안 어떤 분이 내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어루만진 후 다시 가슴을 꿰매고 저에게 가운을 입히더라구요. 그리고 제 목에 십자가를 걸어주더니 사라지는 겁니다.”

놀라 눈을 떴는데, 그때까지 1분에 200~300번씩 뛰던 심장이 얌전한 것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울이지만 기도원 뒷산으로 뛰어 올라갔고 소리도 질렀다. 심장은 멀쩡했다. 엎드려 회개하고 우느라 먹은 걸 모두 토해냈다.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토한 음식을 땅에 묻으며 그는 다짐했다.

“하나님! 이제 의사 박보영은 여기 묻습니다. 저를 쓰시려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군요.” 91년 곧바로 신학대에 입학했고 재산은 교회와 신학교에 기증했다. 수중에 남긴 20만원으로 2년동안 조치원 판잣집에서 기도만 했다. 그리고 개척교회를 세운 것이다.

박목사의 아들은 대학생이다. 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아버지를 빼앗아간 예수님이 밉다”는 것. 지난해 9월 신자 도움으로 교회를 50평으로 넓혔을 때 아들이 왔다. ‘함께 사는 천사들’이 “아들을 바라보는 목사님의 눈이 너무도 사랑에 가득차 있다”고 하자 목사는 아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전과자들과 고아들에게 가는 사랑이 줄어들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예수, 왜 믿냐구요? 예수가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야 하니까요. 제 아들이 이런 아비를 이해할까요?”

〈경향신문 유인화기자 rhew@kyunghyang.com

*경향신문 11월 21일자에 실린 것을 기사와 사진을 허락을 받아 재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