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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이 사람을 만든다. 프랑스의 교육 실험

기쁜맘09 2017. 12. 25. 21:10


        


내년부터 초중고 정규과정에 합창 수업… 함께 노래를 불러보면, 함께 사는 법 알게되더라

마크롱 공약… 예산 250억원 배정, 아이들 자신감 커지고 결속력 배워
계층·지역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모차르트나 바흐 곡 부를 수 있게
음악 수업 지속적으로 받으면 수학·암기 능력 등도 향상돼


지난 11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3구(區)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 이날은 이 학교의 자랑인 '플로베르 합창단'이 지난 3개월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이는 날이었다.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50명의 단원은 음악교사 안느-마리 쥬아니씨의 지휘에 따라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의 가족 오페라 '꼬마 굴뚝 청소부'의 번안곡들을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학생들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학교는 지난 2010년부터 중학교 1~4학년(프랑스의 중학교 과정은 총 4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2시간씩 합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쥬아니씨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합창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했다. 합창단원 사브리나(13)양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예전엔 친구들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걸 싫어했지만, 2년째 공연을 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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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기자

합창 수업의 교육적 효과가 입증되면서 프랑스 정부가 합창을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플로베르 합창단' 공연을 관람한 장미셸 블랑케르 교육부 장관과 프랑수아즈 니센 문화부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합창을 프랑스 초·중·고교 정규 교육 과정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합창 수업은 플로베르 중학교처럼 일부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실시돼 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합창 수업을 정규 과정에 별도로 포함하는 건 처음이라고 일간 르파리지앵은 전했다.

이에 따라 내년 9월 학기부터 프랑스의 초등학교는 의무적으로 주 2시간씩 합창 수업을 하고, 중학교는 선택 과목으로 운영하게 된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내년 예산에 2000만유로(약 257억원)를 별도 편성했다. 뉴스 전문 채널 BFMTV는 "이 같은 방침은 문화 교육 강화를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이라며 "정부는 합창 수업에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당시 "모든 아이가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각급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합창, 연극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니센 장관은 "(합창 수업을 통해) 모든 학생이 클래식 음악과 재즈 등의 고전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회계층이나 지역 등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한 번쯤 모차르트나 바흐의 곡을 불러보게 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블랑케르 장관은 "합창 시간엔 내성적인 아이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성취감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합창은 여러 목소리로 하나의 음악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라며 "합창은 즐거움 속에서 아이 간 결속력과 연대의식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프랑스 남부 도시 페르피냥에 사는 제레미(14)군은 유럽1 라디오 인터뷰에서 "작년에 학교 합창단에 들어갔다"며 "노래를 부를 땐 공부할 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합창 수업은 학업에만 치우쳐 있던 아이들의 삶에 균형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스테파니 데제씨는 "합창 시간에 영어 또는 독일어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어와 친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합창 수업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국공립 음악학교와 음악학원 강사, 음악가들을 일선 학교로 파견할 예정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합창 선곡은 교사의 재량에 맡길 것"이라면서도 "전체 선곡 중 20%는 클래식 음악에서 고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프랑스 국가와 유럽연합 국가(환희의 송가)는 의무적으로 부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디트 피아프, 샤를 아즈나부르 등이 부른 전통 샹송도 권장 목록에 들어 있다.

지난 2012년 프랑스 부르고뉴대가 초등학교 1학년생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음악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수학은 25%, 암기 테스트는 75% 높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노래와 피아노 수업을 꾸준히 받은 아이들은 이전보다 아이큐 테스트 결과가 상승했다.

합창이 학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김선엽 기자 edwar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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