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관람,가 볼만한곳

제주도-우도봉

기쁜맘09 2017. 8. 24. 21:39



해녀 항쟁의 고향

그립엽서 풍경같은 예쁜 카페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섬속의 섬 우도는 제주의 모든 아름다움을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드론으로 촬영한 우도 전경. 우도/ 김봉규 기자 mong9@hani.co.kr

우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비 올 때의 우도와 흐린 날과 맑은 날의 우도, 아침의 우도와 낮, 그리고 저녁의 우도, 평일의 우도와 주말의 우도, 해안길의 우도와 마을길의 우도는 모두 다르다. 누구는 우도가 반나절 코스의 유원지처럼 변해 예전의 아름다움을 잃었다고 했고, 다른 누구는 여전히 한달쯤 살고픈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라 했다. 여러 날 머무른 뒤에야 사람마다 우도에 대한 평이 그렇게 엇갈리는 이유를 이해했다.

 

제주도를 여러 번 갔지만 그때마다 일정이 촉박했고, 우도로 가는 배가 있는 성산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언제나 오후였다. 매번 차마 하루를 더 투자해 우도로 넘어갈 결심을 하지 못했다. 이제 단골 수학여행지가 된, 젊은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가봤다는 우도는 내게는 제주섬에 건너와서도 바다를 다시 한번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멀고도 그리운 섬이었다. 우도가 궁금했다. 작심하고 우도로 떠났다.

 

그리고 6월8일 저녁노을이 시작될 무렵 우도봉 등대 뒤편 절벽에 서 있었다. 저 멀리 걷고 있던 검은 원피스 차림의 한 여자가 숲길로 사라지자 드디어 철저히 혼자였다. 세상의 끝을 보려면 굳이 남아메리카 최남단 파타고니아나 대서양 연안의 포르투갈 호카곶(‘리스본의 바위’)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곳이 진정한 땅끝이다. 적막했고, 바람이 많이 불었고, 때는 어스름 무렵이었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곱게 늙어버린 햇빛은 그러나 깨끗했고, 왼편 발아래로는 맑은 바다가, 저 멀리로는 노을을 배경으로 성산 일출봉과 한라산이 보였다. 절벽을 따라 만든 산책로 오른편으로는 억새가 무성했고, 그 너머 목장에서는 유월의 말들이 게으르게 풀을 뜯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에서 그저 머무르고 싶었다. 우도의 진정한 속살은 북적이던 관광객들을 태우고 마지막 배가 항구를 떠나는 저녁 6시 이후에 드러난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지난 8일 해질 무렵 우도봉 등대 뒤편 산책로는 세상의 끝처럼 쓸쓸했다. 우도/박영률 기자

우도로 떠난 6일은 하필 비가 내렸다. 뚜벅이 여행 취지에 맞게 렌터카를 빌리지 않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100번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성산항으로 가는 701번 버스로 갈아탔다.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에게 전화했더니, 원래 6시에 마지막 배가 있지만 오늘은 풍랑이 심해 오후 3시에 배가 끊어진다며 걱정했다. 701번 버스는 사려니숲길과 산굼부리 입구 등 제주의 허파를 지나 성산항터미널에 도착했다. 서둘러 겨우 출항하는 오후 3시 마지막 배를 탔다.(뱃삯 2000원, 입도비 1000원)

 

요즘 차를 가지고 우도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배를 몇대 보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평일인데다 비바람까지 있어 우도행 도항선에 실린 차량은 가족여행객을 태운 승합차 한대뿐이었다. 하우목동항에 내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푸니 마침 비가 잦아들었다. 내친김에 인심 좋은 식당 주인이 거저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비닐 비옷을 입은 채 하우목동항 부근에서 비양도까지 한시간 남짓 해안 길을 달렸다. 그 길에서 차나 사람들은 아주 드물게 마주쳤다. 섬은 적막했고,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붐비는 우도가 싫은 이라면 비 오는 날 우도 방문을 권한다.

 

우도는 느리게 걸어야 한다. 성산항에서 출발하는 우도 도항선은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곳에 도착한다. 어느 곳이든 도착한 항구에서 출발해 한바퀴를 돌면 된다. 우도 올레 1-1코스는 왼쪽으로는 바다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동네와 들판이 번갈아 나타나는 약 12㎞에 이르는 길이다. 천진항에서 출발해 우도 해안길을 따라간다.

 

천진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조형물이 로터리에 있는 해녀항일운동 기념탑이다. 우도는 해녀의 땅이다. 1932년 일제에 항거한 제주 해녀들의 ‘항쟁의 고향’이다. 기념비에는 우도 사람 강관순이 옥중에서 지은 <해녀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중략)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제주 해녀들은 일제의 수탈과 횡포에 맞서 1931년부터 분연히 일어났다. 당시 연인원 1만7000여명이 참여한 항일운동은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 집단 항일투쟁이며 최대의 어민투쟁으로 평가받는데, 우도가 그 주 무대 중 하나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항일운동가 강관순 선생의 따님 강길녀씨. 우도/김봉규 기자

제주 본섬의 다른 선각자들과 함께 이 운동을 이끈 우도 사람 강관순 선생의 따님을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우연히 만났다. 여장을 푼 곳은 전흘동 망루 등대 부근의 ‘우도 이야기’라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주인장의 고모부가 바로 강관순 선생이었고 그의 옛집 터를 알리는 비석이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 바닷가에 서 있었다. 인근에 사는 강관순 선생의 유복자 따님 강길녀(75)씨는 아직도 현역 해녀로, 새벽 5시 반에 물질을 나가 아침 9시께 돌아온다. 집을 찾았을 때 따님 강씨는 바다에서 캐온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해녀들이 숨죽여 불렀다는 <해녀가>의 탄생에 관해 묻자 강씨는 “아버지는 <동아일보> 기자도 했던 선각자였다”며 “면회를 온 이에게 감옥에서 쓴 시를 종이에 적어 담배꽁초처럼 말아서 주셨는데, 그것이 감옥 밖으로 나와 <해녀가>가 된 것”이라고 했다. 강관순 선생은 그 뒤 폐결핵에 걸려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2년 35살로 요절했고 강씨는 바로 그해 태어났다.

 

여행의 매력은 이처럼 우연한 만남에 있다. 우도를 걷다 보면 바닷가에서 물질하거나 우뭇가사리를 캐고 있는 해녀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손사래를 치거나 “출연료를 줘야지!” 하며 소리치지만, 다가가 몇마디 붙여보면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낸다. 홍조단괴로 유명한 서빈백사 해변에서 우뭇가사리를 캐고 있던 강춘열(66)씨는 “예전에는 해녀라는 직업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는데, 요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까지 될 정도라 자랑스러운 직업이 됐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며 밝게 웃었다. 해변 도로 가 곳곳에는 해녀들이 몸을 녹이던 불턱이 있고, 동쪽 하고수동해수욕장에 있는 키가 3m도 넘는 해녀상도 볼거리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드론으로 촬영한 서빈백사 해수욕장 전경. 우도/ 김봉규 기자

크기는 작지만 고소한 맛이 일품인 우도 땅콩 한봉지를 편의점에서 사서 씹으며 길을 간다. 한봉지 1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껍질째 씹는 맛이 아주 고소해 한번쯤 맛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해변길의 모퉁이를 돌면 쇠물통 언덕이 나온다. 방목하는 소들이 물을 마시러 찾아들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한다. 올레길 표지를 잠시 잊고 돌담과 마을을 가로지른다. 사실 굳이 올레길 표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우도는 어디를 가도 자유고, 절경이고, 올레길이다.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졌다는 홍조단괴의 서빈백사를 지나 다시 바닷가로 나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싱그럽다. 금방 하우목동항이다. 도항선이 정박해 있고, 바다 건너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평일이지만 날씨가 좋아져서인지 해변도로에는 한가로이 노니는 말들이 보인다. ‘노을 승마장’이다. 3~15분 정도 걸리는 코스에 5000~2만원 요금을 걸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도는 조선 시대 말을 키우던 목마장으로 유명했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U-DO=쉼’ 우도/박영률 기자

마을 주민들의 액운을 막아주는 제를 지내던 주흥동 돈짓당과 작은 포구 어귀의 방사탑을 지나 망루 등대와 봉수대를 보고, 올레길로 접어들면 하고수동해수욕장이다. 하고수동은 바다가 섬 안쪽으로 움푹 들어온 자리라 물이 얕고 잔잔하다. 해수욕장 부근에는 그림엽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예쁜 카페가 많다. 해수욕장에서 검멀레 해안으로 가는 사이, 한 와플버거집 앞 귀여운 벤치 위에 재치있게도

 

‘U-DO=쉼’

 

이라는 나무 표지판이 붙어 있다. ‘U-DO’는 우도의 로마자 표기이기도 하지만, ‘U’는 당신(YOU), ‘DO’는 ‘일을 하다’란 뜻으로도 읽힌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섬 곁의 섬 우도에 딸린 또 하나의 작은 섬 비양도를 만난다. 비양도는 우도 동북쪽에 붙어 있는 작은 섬으로, 다리가 놓여 있어 걸어서 5분이면 건넌다. 비양도 안쪽에는 비양도 망대가 놓여 있다. 비양도 망대 앞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인데, 야영촌으로 이름나 있다. 심한 바람을 무릅쓰고 텐트를 치고 있던 김경환(35·경기도 평택) 씨는 “제주공항에 내려 김녕해수욕장까지 걸은 뒤, 이날 아침에 우도에 들어왔다”며 “우도 야영은 두번째인데 이렇게 걷고 나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고 했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검멀레 해변 우도/박영률 기자

마을길과 해안길을 돌아가면 검은 모래로 유명한 검멀레해수욕장과 우도봉 입구가 나온다. 우도봉 아래 절벽으로 둘러싸인 검은 모래사장과 짙푸른 바다가 신비로운 곳이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아주 유명하다. 입구에는 “물은 오열하고 구름 짙어져 사람 근심 속 빠뜨리니/ 황홀하다, 돌아옴이여! 아직도 꿈속인 듯 몽롱하기만 하네”라는 시가 적힌 시비가 서 있다. 조선 중종 때 제주도에 유배된 충암 김정이 남긴 <우도가>의 일부다.

 

명승지답게 사람들로 붐볐는데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 온 중화권 관광객들도 많았다. 해안으로 내려가면 ‘고래 콧구멍 굴’이라는 별명이 있는 해식동굴인 동안동굴이 나온다. 이 동굴은 밀물 때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덕분에 낮에는 동굴 천장에 달이 뜬 듯한 비경이 만들어진다. 하여 ‘주간 명월’이란 이름이 붙었고, 해마다 10월에는 이곳에서 동굴음악회도 열린다. 긴 도보 여행에 지치면 그늘막에서 2만원짜리 멍게·해삼을 한 접시 먹으며 다리쉼을 하거나, 1만원을 내고 모터보트를 타는 것도 좋다.

우도봉 절벽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다

관광객들이 검멀레 해변 앞바다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있다. 우도/김봉규 기자

검멀레 해변에서 나와 드디어 우도봉에 오른다. 우도 여행의 정점은 우도봉이다. 경사가 급한 초입은 오르기 좋게 계단으로 되어 있다. 우도봉으로 올라갈수록 아까 걸어왔던 풍경들이 각각 다른 각도에서 그림처럼 펼쳐진다. 등대 정상에는 등대박물관도 있다. 우도봉을 오르는 길에 싱가포르 난양 대학 부설 어린이예술학교 교장 팡 위안씨를 만났다. 피아니스트이며, 젊은 시절 싱가포르 국립방송에서 사회자로 일하기도 했다는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한 몸에 압축적으로 간직한 곳은 잘 보지 못했다”며 우도를 “성형하지 않은 자연미인”에 비유했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세계 각국의 유명한 등대 모형 14점을 전시 중인 등대 공원도 볼거리지만, 해안 절벽 부근 산책로를 반드시 들러야 한다. 말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이 넓은 초원과 쪽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에 마음마저 시원해지는데, 무엇보다 석양 무렵이 좋다. 이후 천진항까지 걸어가는 길들도 아름답지만 걷기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이때쯤이면 체력이 바닥난다. 빠르게 걸으면 3~4시간이면 되는 거리지만, 풍경과 먹거리를 즐기고 때로 샛길로 빠져들며 쉬엄쉬엄 걷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대낮 해안도로에는 스쿠터와 자전거, 전동스쿠터 등 각종 탈것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평일이어서 그리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주말이나 햇빛이 찬란한 한여름 성수기는 피하는 게 좋겠다. 최근 제주도 등 행정당국에서 지속가능한 우도 관광에 대해 논의가 활발하다. 멀리 천진항의 불빛이 보인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이생진의 시 ‘무명도’ 중에서

우도/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