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MBC앵커 조정민 목사
소아병적 사람들 권력 비즈니스 관계 교회의 본질 흐려”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것이 교회와 러브호텔, 그리고 정치평론가라고 한다. 밤에 내려다보면 붉은 십자가와 핑크빛 러브호텔 네온사인 천지인 것 같고, 사무실이건 술집이건 정치와 정치인을 안주삼아 떠들며 정치평론가 수준의 논평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랑과 정의가 넘쳐흐르고, 정치도 잘 이뤄져야 할 것 같은데 왜 우리 사회는 갑갑하기만 할까.
그런데 주변에서 아주 신기하고 신선한 교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청담동 카페 자리에 생긴 교회인데, 강대상(설교대) 같은 교회 비품도 없고 대형 할인매장에서 구입한 의자만 있는 교회란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서서 예배를 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신도가 는단다. 그 교회를 이끄는 이는 조정민 목사다.
MBC 워싱턴 특파원과 뉴스데스크 앵커로 이름을 날린 언론인 출신이다. 뒤늦게 사목의 길로 들어선 그는 요즘 교회만이 아니라 15만 팔로어를 거느린 SNS 목사에, 스타들의 주례 목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한 신도는 “십일조를 내란 말도 안하고 설교에 성경 말씀 인용도 별로 없다”고 전했다. 과거 언론인 시절에 ‘주(酒)님’을 섬겼던 그가 진짜 ‘주(主)님’을 섬기는 목사로 변신한 것이 궁금해 그를 만나러 갔다.

3월 3일에 첫 예배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죠. 처음에 40여명으로 시작했는데 주일 예배의 경우 3부까지 합니다. 한 자리에 빼곡하게 앉으면 260석 정도인데 거의 다 차니까 많이 늘어난 거죠.”
대부분 개척교회라면 도심에서 벗어나거나 약간 허름한 분위기를 연상하는데, 청담동 럭셔리 빌딩에서 시작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처음부터 교회를 만들려고 정한 장소가 아닙니다. 전에 함께 성경 공부를 하던 이재룡·유호정 부부가 이 건물의 주인이에요. 조그마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8월에 그들이 운영하던 북카페가 폐업하면서 자리가 났어요. 그때부터 세를 들어 본격적으로 교회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셈입니다. 다른 큰 교회처럼 주차공간도 없어서 저도 차를 안 갖고 옵니다. 교인들에게도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합니다.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욕은 먹지 말아야 하니까요.”
교회 이름이 베이직(Basic)입니다.
“베이직은 근본이라는 뜻과 함께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의 머릿글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교회 문턱을 낮추고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교회의 본질은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크기나 신도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 흘러넘치는 사랑이 그대로 삶이 되는 교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공동체의 꿈을 베이직 교회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십자가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곳인 이 교회에 왜 사람들이 모일까요.
“생전 처음 교회에 나오거나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나온다는 이들이 많아요. 그들이 교회를 떠난 것은 예수님을 떠난 게 아니었으니까요. 늘 마음 속으로 교회를 갈망했지만 정작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 대신에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 상처 받아 떠났던 이들이 예수님이 보이는 교회를 찾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기독교, 특히 교회나 종교인이 권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특정 교회에 나가는가 여부가 관심사가 되기도 했죠.
“교회는 예수님이 불러낸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로마에서 국교로 인정된 이후 교회는 제도권이 되고 이익집단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만 있는 곳인데, 돈과 사람이 몰리게 되고, 그걸 보고 그들에게 아부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극히 일부의 사람들 때문이긴 합니다만, 몇몇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을 배척하거나, 혹은 지나친 독선으로 네티즌들로부터 ‘개독교’란 비난을 듣습니다.
“종교는 속성이 다 같습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는 모여서 기도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랑을 베풀기를 강조했습니다. 네모난 원이 불가능하듯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이기적일 수가 없어요. 이기적인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이 아니죠. 예수의 생애 가운데 이기주의적인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어요. 그런데 소아병적인 사람들이 허상의 교회를 따라가고, 어떤 조직을 만들며, 권력과 비즈니스가 형성되어 교회의 본질까지 흐려지면서 기독교가 매도당하는 겁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본다면서요. 63세인데 단 하루도 못쉬고 매일 새벽에 강론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진리는 대단한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진리의 말씀임을 전하는 것이어서 힘들지도 않고 사람들도 많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의 생애나 성경 말씀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지만, 가장 기초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사실이라는 기초 위에서 이뤄집니다. ‘Faith is Fact’(믿음은 사실이다)란 말이죠.”

10년 전에 언론인에서 홀연 목회자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게 화제가 됐습니다. 가수, 검사, 깡패 출신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목사가 된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파산, 이혼, 부모의 암선고 등 그야말로 벼락과 천둥을 맞아 납작 엎드리고 종교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왜 잘 나가는 방송인이 목사로 변신했나요.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집사람이 온누리교회의 새벽집회에 너무 열성적으로 가기에 바람이 났나, 혹은 사이비 종교인가 의심스러워 그 교회를 추적했습니다. 우리 방송 르포 프로그램에 방영할 생각으로 취재하다 그만 예수님의 포로가 되었어요. 전 방송기자 생활이 적성에도 맞고 일중독일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소주 10병을 거뜬하게 비우는 주당이었고, 싱글 실력의 골프 마니아에, 친구들끼리 모이면 포커 등 잡기에도 능했죠. 그동안 교통사고를 10번 이상 당했고 병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어요.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데 집착한 것은 그 모든 상처를 숨기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스무살에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 바꾸어 놓겠다고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습니다. 쉰에야 바뀌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습니다.”
내려놓기, 비움은 불교 철학이 아닌가요.
“다른 종교는 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예수는 우리를 찾아오는 종교입니다. 그분이 나를 찾아와 불러 세우신 거죠. 그리고 기도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내가 크리스천이 되길 바라며 기도하고 주변에도 기도를 부탁했어요.
사건이 생기기 전에 기도의 그물망에 포위되어 있었던 셈이죠. 크리스천은 절대 혼자 될 수가 없어요. 어떤 엄청난 영적인 배후 세력의 지배와 영향력이 나의 생각을 바꾸고 몸을 끌어오는 겁니다. 그걸 섭리라고 생각하는 것, 외경심이 생기는 것이 신앙심의 출발이죠. 모든 것은 다 계획이 있고 시초가 있는데 우리는 한 사건이나 일의 배후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고 살아요. 신앙 없이 사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죠.”
1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계획대로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10년 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원래 미국에서 유학을 마칠 당시만 해도 이민자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하용조 목사의 권유로 귀국을 택했는데, 귀국한 다음날부터 목사 안수도 받기 전에 교회에서 설교를 했어요.
이 교회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하용조 목사가 건물을 신축할 때 북카페를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었다는데 건물주가 기독교인이니 카페인데도 벽에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부조로 새겼어요. 마치 교회를 준비한 것처럼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것 역시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인터뷰도 번거롭고 성가시고 할 필요를 못느끼지만 혹시라도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한 분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는 겁니다.”
기자로서 25년간 나쁜 소식만 전해서 이젠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어 목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쁜 뉴스는 절대 사람을 못바꿉니다. 더 악하게 만들고, 더 큰 불안감을 조장할 뿐이죠. 반면 좋은 뉴스는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 자유인임을 전해주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럼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대부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탈선하고 술과 도박에 중독되는데,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교회에서 주는 가장 좋은 소식이 아닐까요.
‘당신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정말 사랑받는 존재이고 중요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 목사와 교회의 역할입니다. 즉 고아가 아니고 사랑하는 부모가 있음을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정말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종교생활을 꼭 교회, 성당, 절에서 해야 하나요. 교회에 가지 않고도 착하게 살고 늘 기도하면 안 됩니까.
“예수님은 교회 같은 시스템으로 시작하지 않았고 용납도 하지 않았어요. 저를 목사로 이끄신 고 하용조 목사도 교회는 제도가 되는 순간 교회의 본질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죠. 시스템이란 마일리지 같아요. 좀 더 마일리지를 쌓아서 이코노미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서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고, 현세에 헌금이나 시주를 많이 해서 내세에는 퍼스트클래스로 살아보자, 즉 평생 마일리지 적립만 하는 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일리지로는 천국을 못갑니다. 지상의 화폐와 천국의 화폐가 다르거든요. 많은 목사들이 신과 인간 사이에 끼어드는 강도나 도둑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개개인이 단독자로서 예수님이나 하나님과 1대 1로 대화를 하면 됩니다. 예수 역시 자신을 소개할 때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 등으로 설명했을 뿐 종교적 단어는 쓰지 않았어요.
다만 교회는 공동체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국을 만들자는 겁니다. 살아서 천국을 경험하면 사후에 천국에 가서도 익숙하게 생활하겠죠. 이 땅에서 교회란 예수와 하나 된 사람들이 한 몸을 만들어 공동체 속에서 함께 피어나는 것, 생명이 완성되는 것을 도와주는 곳입니다.”
언젠가 피천득 선생님을 만났을 때 ‘예수는 항상 남루한 옷만 걸쳤고 베드로 등 제자들도 참 검소했는데 왜 교황이나 목사들은 그렇게 화려한 차림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요즘은 절이나 교회도 너무나 대형화되고 있는데요.
“아마 가장 거대한 교회는 로마의 바티칸 성당일 겁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해 교회의 슬림화를 강조했지만 미완의 개혁을 한 셈이죠. 예수는 교회란 개념도 모르십니다. 아무리 거대하고 거창한 교회를 만들어도 하나님,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그저 인간들의 집단일 뿐이고 이합집산이 일어나죠.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죠.
종교란 남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바꾸는 것은 권력 시스템이죠. 권력은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예수는 그저 사랑하라고만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라, 출세하라고도 하지 않았어요. 신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라고 할 뿐입니다.”
조 목사의 한 친구가 ‘그 친구도 50세 이전엔 죄를 많이 짓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데 나는 평균수명이 늘었으니 세속적으로 살다 70세에 교회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예수를 믿으면 언제라도 천국에 간다면서.
“미숙하고 안타까운 계산법입니다. 플라톤의 이야기처럼, 동굴 안에선 밖의 생활을 모르지만 일단 밖에 나와 동굴 밖 생활을 체험한 이들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지 않죠. 태양을 경험한 이들이 촛불에 의지하면서 만족할 수 있나요. 하루라도 빨리 이런 자유와 기쁨과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려주고 싶습니다.”
조정민 목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가 매일 보내는 트위터도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욕한다면 그건 당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을 더 잘 안다면 더 심한 비난과 욕을 했을 것이다”란 대목이 눈에 띄었다. 뜨끔했다. 성경 말씀이 아니고도 진실을 알려줘서 감사했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