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이 터진 와중에 덩달아 성희롱 가해자로 몰려 음악계를 떠나야 했던, 천재 지휘자 구자범 씨가 ‘성희롱은 사실이 아니라’며 뒤늦게 결백을 호소하고 나섰다.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前 상임지휘자 구자범 씨
지휘자 구자범씨 측은 지난달 28일, 이 같은 내용의 명예훼손 혐의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사건번호: 2013형제113682, 배당:형사2부)시켰으며, ‘go발뉴스’ 취재결과 서울 중부경찰서가 사건을 맡아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부경찰서는 지휘자 구씨의 고소 내용을 근거로, 구씨에 대해 허위사실을 퍼뜨린 단원과 그 단원의 제보만을 믿고 확인없이 기사를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뉴시스’와 ‘중부일보’ 등의 기자들에 대해 조만간 소환조사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5월 17일 뉴스통신사 ‘뉴시스’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있던 구자범 씨가 남녀 단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중, 한 단원에게 ‘연주회 때 팬티가 하얀색인 것을 봤다’는 등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고, 마침 일주일전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의 여파로 유사 사건에 대한 기삿거리를 찾던 중부일보 등 거의 모든 매체가 이 기사를 받아 게재한 바 있다.
지휘자 구씨는 고소장에서 “일부 단원들이 불성실한 연주태도로 연주정지 처분을 받은 단원을 이용하여 제보한 행동에 언론들이 무책임하게 놀아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점심식사에 참석했던 한 단원은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한 단원이야말로 그날 식사 당시 웃고 떠들던 당사자인데 왜 언론에 성희롱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인측 대리인 김성훈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지휘자 구자범 씨는 언론 보도 당시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려 애를 썼지만, 당시가 윤창중 사건 광풍이 휘몰아치던 때였던 만큼, 메이저 언론을 포함한 어느 언론도 반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구씨에게 하루아침에 저질 성희롱 가해자로 누명을 씌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언론들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휘자 구자범 씨는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다 유럽에 뒤늦게 음악 유학을 떠났으며, 10년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의 국립오페라 극장 수석상임지휘자로 활동하는 등 세계 정상급 음악가로 자리매김한 인물로, 귀국과 동시에 국내 언론들에 의해 천재 음악가로 소개돼왔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4일) <데일리 고발뉴스>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지휘자 구자범씨 음해 조직적 시도 포착”
경찰, ‘성희롱’ 연관검색어 조작 오케스트라 단원 ‘기소의견’ 송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이른바 ‘성희롱’ 파문으로 사퇴하기 이전부터, 지휘자에 불만을 품은 일부 단원의 조직적 음해 시도가 있었음이 경찰 수사결과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17일 수원남부경찰서는 올해 초, 구자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 지휘자가 네이버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할 때 ‘성희롱’, ‘변태XX’ 등이 자동으로 이름 뒤에 붙어 검색 되는걸 이상하게 여겨 신고한 사건을 조사한 결과, 경기필 단원 A씨 외 한명이 검색어 조작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 등은 지휘자 구자범 씨의 이름과 ‘성희롱’, ‘변태’ 등의 단어를 네이버 검색창에 반복적으로 입력하는 수법으로, 네티즌이 구자범 씨의 이름을 검색하면 ‘성희롱’ 등 저속한 단어가 자동완성 방식으로 이름과 함께 검색어로 노출되도록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前 상임지휘자 구자범 씨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방검찰청 수사관계자는 범행 경위와 관련해 “구자범씨가 지휘자로 부임해 오면서 실력이 부족해 일자리를 잃거나 강도 높은 연습으로 자신들의 입지에 불안을 느낀 일부 단원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짓”으로 보고 “조만간 A씨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go발뉴스’에 전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4일 ‘go발뉴스’는 구자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 지휘자가 “연주 중 니 팬티 봤다”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며, 기사를 쓴 <뉴시스>, <중부일보>등 언론사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취재 결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여성단원들은 연주시 전원이 바지를 입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점심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이 있었다’는 보도 내용도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go발뉴스’가 만난 단원 B씨는 당시 식사자리가 “서로 대화를 즐겁게 주고받는 자리였고, 식사후에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왜 그런 언론보도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보도내용을 강력히 부인했다.
이처럼 해당 언론들은 ‘go발뉴스’ 취재과정에서 기본적 사실관계 확인도 건너뛰는 등 취재가 부실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문제의 점심식사 자리에 함께 동석했던 3명 모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단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식사를 함께 한 단원들은 “성희롱 기사와 관련한 인터뷰를 한 적도 없거니와, 보도 이후 몇몇 단원은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기사에 한줄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어떻게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익명’으로 맘대로 기사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단원 C씨는 “일부 단원들이 식사자리에 있었던 한 여성단원을 앞세워, 성희롱 의혹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그 여성 또한 일부 단원들의 ‘밥그릇 싸움’의 희생자”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밥그릇 싸움’에 대해 추가로 묻자 C씨는 “구자범 씨는 지휘자로 부임해 온 이후, 경기필의 레퍼토리를 기존의 가요나 팝송 위주에서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교향곡 등으로 교체했으며, 이 때문에 고강도 연습이 이어지자 일부 단원들은 ‘외부에 레슨 나갈 시간이 줄어든다’며 크게 반발했었다”고 증언했다.
취재결과, 네이버에 연관검색어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는 단원 A씨 역시 구자범 지휘자에게 반발했던 단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A씨는 ‘성희롱 발언’ 사건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네이버에 ‘성희롱’ 관련 검색어 조작에 착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구자범 전 지휘자의 고소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배당 돼, 서울중부경찰서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12.04 <데일리 고발뉴스> ‘윤창중 광풍에 날아간 천재음악가의 결백’ (7분 20초~)
[왜냐면] 구자범에게 지휘봉을 돌려주라!
사필귀정이란 말도 있지만 때로 정의의 여신은 너무 늦게 그 저울을 들고 나타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4월에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전 경기필 지휘자 구자범의 연관검색어를 조작했던 사람들이 지금에야 붙잡혔다 한다. 사연인즉 여러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구자범을 음해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그의 이름만 치면 자동완성기능을 통해 변태니 어쩌니 하면서 명예훼손 글로 자동적으로 이동하도록 한 것인데, 사이버사령부나 국정원만 댓글공작을 하는 줄 알았더니 보통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당시 이를 발견한 구 지휘자가 4월에 이미 수사의뢰를 했는데, 여러 달 뒤 경찰이 범인들을 잡고 보니 그 일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경기필 단원들이라 한다. 최근 <고발뉴스>의 보도를 통해서도 5월에 있었던 구자범 성희롱 파문이 일부 단원들에 의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거니와, 이런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기소된 사람들을 비롯해 경기필의 일부 단원들이 4월에 인터넷 공작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에 5월에는 오프라인 언론 매체를 통해 구 지휘자를 성희롱범으로 몰아 음악계에서 영구히 추방하고 매장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이 틀림없는 일로 보인다.
도대체 까닭이 무엇일까? 한 단원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 따르면, “구자범 선생님처럼 실력 있고 단원들을 아끼고 자기 사리사욕 챙길 줄 모르는 지휘자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데 그런 사람이 왜 그렇게 미움을 받게 된 것일까? 고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또다른 단원은 “구자범씨는 지휘자로 부임해 온 이후, 경기필의 레퍼토리를 …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교향곡 등으로 교체했으며, 이 때문에 고강도 연습이 이어지자 일부 단원들은 ‘외부에 레슨 나갈 시간이 줄어든다’며 크게 반발했었다”고 증언했다 한다.
그가 아직 경기필에 몸담고 있었을 때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지휘자라면 69점짜리 단원을 내보내고 71점짜리 단원을 영입해서 조금씩 교향악단의 소리를 더 좋게 만드시겠어요, 아니면 그냥 모든 단원들을 다 데리고 서로 격려하면서 화음을 만들어가는 길을 택하시겠어요?’ 다소 난감한 질문이었으나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나라면 단원들을 그렇게 경쟁을 시켜 상시적인 불안감 속에서 연주를 하게 하는 것보다 다소 서툴더라도 서로 신뢰하면서 인간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길을 택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안도의 한숨 비슷한 소리를 내더니,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휘자로서 그게 늘 어려운 물음인데 저도 선생님하고 생각이 같아요” 하고 화답했다.
나는 구 지휘자를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 까닭은 그가 100분이 넘는 교향곡 악보를 외워서 지휘하기 때문도 아니고, 교향악단 단원들에게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종용하기 때문도 아니며, 운동권도 아니었다면서 5·18 30주년 기념연주를 기획할 만큼 역사의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그토록 섬세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인간, 성찰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중히 지켜주어야 할 가치가 있는 예술가인 것이다. 그 성찰은 언제나 건강한 인간성에 토대를 두고 있었고 온전한 인간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도구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에 음악까지 허울 좋은 예술의 이름으로 인간을 수단화하고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인간성을 파괴하는 길을 걷는 것을 스스로 거부했던 것이다.
그 신념에 따라 그는 광주에서도 경기도에서도 단원을 내보낼 수 있는 지휘자의 권력을 단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단원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연주에서의 성실함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단원들을 철저히 연습시켰고 또 단원들 스스로도 더욱 열심히 연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단원들은 그 요청에 대해 비열한 모함으로 응답했다. 단지 그들이 레슨을 해서 부수입을 얻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비천한 소란에 직면해 구 지휘자가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사표를 던지고 떠나버린 것은 참으로 그 사람다운 일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 그는 진리를 구하는 철학도가 아니었던가!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나는 69점짜리 연주자도 그것 때문에 해고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연주자에겐 연주뿐만 아니라 레슨도 중요한 교육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예 본말이 전도되어 아름다운 연주보다 레슨을 해서 버는 돈이 더 좋기 때문에, 연습 많이 시키는 지휘자를 몰아낼 궁리나 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라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회개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 그대들에게 눈곱만큼이라도 자유인의 긍지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편집자주] ‘go발뉴스’가 지난해 12월 3일과 17일 보도한 ‘윤창중 광풍에 날아간 천재음악가의 결백’(☞ 해당 기사 보러가기), ‘지휘자 구자범씨 음해 조직적 시도 포착’(☞ 해당 기사 보러가기) 등의 보도와 관련, 춘천시립교향악단의 백정현 지휘자가 ‘go발뉴스’에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구자범 지휘자, 그는 외국에서 먼저 알려지고 활동한 검증된 음악인이다. 한국에선 광주에서 5.18의 30주년 기념 ‘시민 518명과 함께하는 부활 교향곡’이라는 감동적인 이벤트를 통해 화려한 조명을 받았으며, 금난새씨의 뒤를 이어 경기필에 입성한 스타 지휘자이다.
▲ 춘천시향 백정현 지휘자
음악가라는 타이틀 외에도 철학도였다는 가치가 더해져서 음악 공연만큼 음과 삶의 본질을 따지는 ‘강연’의 이력이 돋보이는 특이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순식간 구설수에 휘말려 경기필에 사표를 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일을 하거나 당했는지 잘 모른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그와 생활을 같이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언급할 때면 지휘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그는 -본인이 원한다면, 또 다시 재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 언제든 더 좋은 자리에 국내외 어디를 막론하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훌륭한 지휘자라는 것이다.
최소한 그는 그런 음악적 확신을 나를 비롯한 음악인들에게 이미 연주로서 확인시켜 주었고,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상관없이 그 누구도 그의 음악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는 훌륭한 음악인으로서, 또 세상을 보듬어 보려는 철학가로서 이제껏 가치있게 평가되었으며 이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는 것이 이 글을 시작하는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졸필을 써 내리기에 앞서 먼저 이 글을 쓴 이유를 달아야겠다.
그를 만났다. 기자도 그 무엇도 아닌 음악가로서였다. 그저 경기필 외부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너댓 번 만났던 동료지휘자로서 얻은 인연이었을 뿐, 그 전엔 그를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가 머물고 있는 바닷가로 내려가 안부를 물으며 현재 내가 재직하고 있는 춘천시향에 와서 언제고 상황이 다시 된다면 객원 지휘를 해줄 수 있는 지를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음악적 가치를 알고 있던 내게는 작년초에 이미 섭외가 진행되다가 날짜문제로 미뤄진터라 이것이 당연한 시도였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지휘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단 다른 시향의 객원지휘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뿐 아니라, 앞으로 아예 지휘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당분간이든 아니든 내겐 놀라운 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동네 피아노학원에 강사로 채용되고자 지역 피아노학원을 전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2년 만에 경기필을 대한민국 최고 악단으로 만들고 백 여명을 호령하던 수장이 보인 모습은 실로 놀랍도록 초라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네 곳의 동네 학원들이 그의 피아노- 그는 정말 놀라운 피아니스트이다!- 를 거부했고 그는 아직도 직업이 없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그가 낸 사표는 경기필에 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음악계에 사표를 내었다는 것이다. 그 간의 단원들과의 사건과 사연,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그 화려했던 명장이 지금 이런 상황에까지 와있게 되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 글을 쓸 동기를 찾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사표 낸 것은 경기필이 아니라 음악계였다’라는 그의 답 때문에 생전 글을 써본 적 없던 내가 이렇게 펜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를 위로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리를 돌려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내가 이전에 그를 겪어봤던, 그를 조금 아는 입장에서, 세상에 알려야 할 부분들이 조금은 남아 있기에 도리가 느껴져 쓰는 것이다.
내용엔 세 가지가 있다. 내가 직접 겪은 일, 공인된 기사내용,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과거 당시에 여럿 앞에서 한 얘기들의 모음정도이다. 그가 오늘날 있을 불미스런 사고를 위해 미리미리 공공연한 거짓을 말해둘 이유는 거의 없다고 보기에 이 역시 사실로 믿고 포함시킨다.
그를 경기필 신입단원 심사에서 외부 심사위원 자격으로 처음 만났다. 그는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만반의 음악적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여러 가지로 지원자를 테스트하느라 매우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그 심사 방식이 여타의 오케스트라 오디션과 매우 많이 달랐다. 그전에 해둘 말이 있다. 심사의 예민할 수 있는 얘기들은 피할 것이다. 그저 내가 만났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표현하는 정도로만 밝힐 것을 분명히 해둔다.
오디션은 일반적으로는 말 한마디 없이 주어진 과제곡을 한 번 연주하면 끝이었고, 그나마 그 곡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간에 멈추게 하고 나가게 하는 경우도 있어 통상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시험 중에 지원자가 잘 못하면 ‘지금 연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해 보라’고 주문하였고, 자신의 지휘에 맞추어 연주를 해보라고 했다가 잘 따라오지 못하면 나를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연주를 해보라고 요청했다.
테크닉이 어려운 것은 이제 그만하고 동요나 찬송가나 애국가 같이 쉬운 노래 중 아무거나 심사위원들에게 감동적으로 들리도록 연주해 보라고 하기도 했다.
타악기 오디션을 할 때면 인터넷 찬스, 전화 찬스, 사전 찬스를 사용하도록 허락했으며 이를 토대로 지금 주어진 악보가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연주하라는 지시인지 시간 내에만 알아내어 연주하라고 하기도 했다.
악보에 써 있는 말이 무엇인지, 그 악보가 곡의 어느 부분인 줄 아는지 그는 집요하게 물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음악을 왜 하고 싶은지, 하필이면 왜 경기필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지, 심지어는 당신은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 등등을 직설적으로 꼬치꼬치 물었다.
어쨌든 일반적인 오디션의 상황과 너무 달라서 나중엔 음악계에 온갖 구설수가 생겨났던 바로 그 순간이었기에 그 자리에선 많이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심사방식의 독특했던 진행에서의 사람을 보자는 것이지, 구체적인 지원자를 언급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상한 일은 심사위원들 끼리 있는 시간에 일어났다. 음악에 관하여서는 그렇게 확신에 차서 지원자들의 모든 것을 요청하여 들어보았던 그가, 심사위원들과의 토론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주저하고 다른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했다.
그 듣고 싶어 한 이야기는 비단 음악 이야기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음대를 나오지 않아 한국 음악계에 전혀 인맥이 없던 그라서 그랬는지 지원자들의 성향과 사람 됨됨이를 더 많이 알고 싶어했다. 심지어 그 지원자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느끼는지 까지 계속 물어오니 ‘참 특이한 심사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르고 또 고르고 다시 고르는 동안 참 지겹게 시간이 흘렀고, 매 심사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 심사위원들 사이에는 경기필에 아침에 심사하러 가면 그 날은 저녁먹고 밤 늦게 오는 날로 되어있었다.
그는 ‘음악’에 그토록 집요했지만 결국은 ‘사람’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신입단원 오디션 뿐만 아니라 기존 단원 평정 심사동안도 매서운 정열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우리 심사위원들에게 더 무섭게 해 달라는 주문까지 미리 해두었다.
그러고선 심사위원들과의 토론을 시작하면 역시나 반대로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있는 사람들 내치지 말고 함께 가야합니다’ 라며 반복했고 양해를 청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단원을 살릴 방법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도 내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은 이미 기존의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혀진 바가 있고, 역시 내가 아는 그는 그것을 신념으로 믿고 실천하려 하고 있었다.
한 일화를 예로 들겠다. 모 주자가 취임 초창기 연습시간에 구자범 지휘자에게 대들고 자리를 차고 나간 것은 음악계에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그 당시에 들었던 속사정은 이랬다. 두번째 징계위원회에 들어가 그 사람을 살려주고 기회를 달라고 간청을 한 게 바로 다름 아닌 구자범 지휘자 스스로였던 것이다.
그가 징계당사자인 단원과 같이 가서, 징계위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오케스트라는 마음으로(!) 함께 음악을 하는 단체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마음이 떠났으면 함께 음악을 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의 1차 때의 징계는 정당했지만 사람이 반성하고 마음을 바꾸면 훨씬 더 좋은 음악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이 단원은 마음을 바꾸었으니 징계를 풀어 달라. 그가 함께 연주하면 훨씬 더 좋은 연주를 하는 단체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용서해 달라.”
지금 구지휘자의 이런 속 모습을 아는 단원들이 몇이나 될까?
그는 오디션 심사와 같이 남들에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호랑이 같았고, 1년에 한 번 평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연주회가 끝난 다음 그 연주 심사를 도입하는 등 단원들에게 지속적인 음악적 압박도 가했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는 늘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전제했고, 따뜻하게 단원을 감싸 안으며 마음으로 배려했다.
그가 수입의 거의 대부분인 어마어마한 액수를 매번 단원들과의 만남과 어울림을 위해서 쓴 것도 외부에까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휘자인 내가 봤을 때 그는 딴 생각하는 지휘자가 아니다. 단원 모두가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참 ‘바보 지휘자’이다.
광주 재직 당시의 일 또한 유명하다. 연주하다가 틀려도 티는 내지 말아야 한다고 연주회 전에 손수 적은 메모를 나누며 단원을 격려할 줄 알았고, 연주 전에 일일이 보면대마다 초코렛을 얹어두고 사라지는 산타같은 지휘자였다.
매 심사 때마다 초췌한 모습으로 와서 공부하느라 밤을 샜다고 하던 그는 그만큼 공부할 시간도 없이 사는 열심 지휘자였다. 보이는 천재성답지 않게 꼼꼼히 읽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지독한 노력파이기도 하다. (지휘자는 다른 지휘자의 연주를 보면 그의 리허설이 어떻게 진행되었을 것이며 지휘자가 얼마나 사전에 준비를 하였을지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 편이란 점을 말해둔다.)
그러나 그의 시간 씀씀이는 어떤가? 매달 어마어마한 액수가 단원들과 식사하는데 나갈 만큼 단원들과 화합을 한다는 명목 아래에서 물 쓰듯 펑펑 쓰여졌고, 그에 따라 그의 아까운 시간들도 단원들을 위해서 만큼은 큼직큼직하게 할애되어졌다.
그에겐 악보와 단원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지휘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단원들을 갑을관계로 함부로 대하며 괴롭힌다는 것을 나는 좀처럼 믿기가 어렵다.
그런 그에게 사건이 터졌다.
<go발뉴스>,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 이미 보도된 바에 의하면 단원의 몇몇이 연습시간을 운운하며 고의적으로 인터넷 검색시스템 등을 통해 조작을 벌였고 때마침 불거진 모 대변인 성희롱사건의 상황과 시기를 이용했으며 그들의 주도하에 기사를 넘겼고 사실 확인조차 안 된 상태로 기사가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이 같은 일들이 사실무근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기에 밖에서 보기엔 이미 구지휘자의 누명은 한꺼풀 벗겨진 모양새다. 구자범 지휘자에겐 참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참 무서운 건, 안했는데도, 사실이 아닌게 드러나는데도, 그 단어가 그 사람에 스쳐졌다는 이유로 사회는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네 학원마저 그에게 낙인을 찍어가는 걸 보자니, 마치 번져가는 입소문 같은 산불 앞에 물 한바가지 들고 속수무책 당하는 꼴이다.
조작극이 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생채기를 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참 걸맞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비록 그것은 사라졌지만 이제 최소한 그에 걸맞는 명예는 회복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제껏 그 사실을 알고도 침묵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저 드러난 사실만이라도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할 도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 또한 한 악단의 지휘자로 있기에 이 일에 대해 내가 경험한 진실에 대한 언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유로 내가 봤고 겪은 구자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음악이 철저히 연구되어져 그만의 방법으로 완벽하고 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지휘자로서의 모습이 그 하나일 것이고, 철학을 한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통해 사람을 먼저 보고, 역사를 보고, 약자를 위해 배려하는 솔직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일관되므로 흐뭇하게 느껴지는 모습이 그 둘째일 것이다.
그는 경기필의 취임 후 첫 음악회를 놀랍게도 소년원으로 정했고, 이후 줄기차게 교도소를 방문하는 등 그런 쪽의 행보를 이어 나갔었지 않았던가?
그런 그에게 돌아와 줘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 가치에 걸맞는 명예이다.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모두가 사실 확인의 의지를 갖고 지켜봐 주고, 그가 그간 살아 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삶의 철학을 믿고 그에 관심 가져 주는 것이다!
이제 할 말은 다 했다. 아쉬운 대로 대충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그는, 단원들에게 밥과 술사며 아낌없이 펑펑 쓰다가 현재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졌단다. 몇 달 후면 파산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배시시 웃으며 말하고 또 국밥 값을 내려고 한다. 곧 파산할 처지에 있다면서도 지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음악계에 환멸을 느꼈나 보다.
국밥 값을 내러가는 명장의, 찢어진 검정 코트 뒷태를 보고 있자니 좀.. 그랬다.
그래도 글쓰기에 낯선 초짜가 이정도 양의 글을 알아서 써 내렸으니, 미안하게 얻어먹은 국밥(과 소주)값은 한 거겠지, 싶다
그저 음악이 좋고 단원들이 좋았던 분인데, 단원들이 따르고 관객이 사랑하는 지휘자인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너무 속상할 뿐입니다.
조작된 기사들 속에서 그를 단정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원하는건지,..
정말 잘못된 사람은 일부 단원들입니다. 네이버에 구자범 연관검색어를 조작한 단원은 아무 죄의식 없이 최근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지금도 뻔뻔하게 웃으며 출근하고 있습니다.
당시 문제의 여자단원을 앞세워 내용도 없는 서명용지에 여자단원들의 서명을 거의 반강제적 분위기 속에 받아간 몇몇 단원은, 일단 서명을 받아놓고 나중에 내용을 써서 알려주겠다고 한 말과 달리, 내용을 공지하지 않고 사용처를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아직도 내용을 모르는 단원들이 많습니다.
여자단원 전체가 구자범 지휘자선생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기사내용과 함께 이 서명내용이 기사에 들어가기도 했었습니다.
사표수리 전 우리는 구자범 지휘자와 함께 하고 싶은가, 아닌가 비밀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과반수 이상이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지휘자라면, 정말 내쫓고 싶은 지휘자였다면, 이게 가능한 결과일까요. 경기필 대다수의 단원들은 그를 존경하고 그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본 그는, 그런 지휘자입니다.
다음은 신문에 성희롱 운운하는 최초의 기사가 실리기 이전인 5월14일에 경기도청 감사관에게 제가 보낸 메일입니다. 그 메일 전문을 이름만 삭제하고 하나의 가감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 5월 14일 감사실에 보낸 메일 전문 =============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 AAA입니다.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들이 진실과 너무 많이 다른 모습인데 제가 제 목소리를 내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걸렸습니다.
BBB 조사관님께서 상상하시는 이상으로, 오케스트라 안에서 현재 구자범 선생님께 유리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발언을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한 단원이 서명에 대해 이의라고도 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의문을 제기했다가 몇몇 사람들로부터 공격당하고 오케스트라에 나오는 것이 힘들어 휴직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사건에 대해서 처음 안 것은 4월 15일 오전 11시 연습실에서였습니다. 그 전전날인 13일 단체메세지가 왔는데 오전 11시에 모든 여자단원들이 연습실에 모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CCC (주: 한 여자단원) 선생님께서는 이 일과 상관없이 앞으로를 대비해서 여자단원들이 서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고 몇몇 분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바로 준비해온 서명용지를 꺼내 건네셨습니다. 내용엔 구자범 선생님과 DDD (주: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한 단원) 선생님에 관련해 어떤 내용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추후에 이 서명이 쓰이기 이전에 서명과 함께 있을 내용과 언제 어떤 용도로 쓰일지에 대해서 공지하신다고 하셨었습니다. 그 날 오후부터 진행된 오페라 공연에 전 단원이 참석하지 않아 모두 모여있는 지금 서명을 받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본인 말씀으로 강제성은 없다고 하셨지만, 결국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찾아가 서명을 받았고 저 또한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 서명을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제가 그 서명을 거절할 경우에 생길 상황에 더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그 서명이 사장님께 들어가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다른 단원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단원을 통해서 그 안에 구자범 선생님과 DDD 선생님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음을 전해들었을 뿐 아직까지도 그 내용을 본 적이 없고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휴직을 한 그 단원이 다른 단원들에게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전해들은 지금으로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BBB 조사담당관님께서는 지난 금요일 저희 단원 전체와 구자범선생님이 모인 자리에 계셨었습니다. 제가 BBB 조사담당관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날, 구자범 선생님께 불만이 있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쉽게 발언을 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 반면, 회식자리에 있던 단 한명의 여자단원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구자범 선생님을 옹호하거나, 편을 드는 것을 떠나 중립적인 발언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지난 2년 구자범 선생님께서 단원들에게 사적인 감정이나 어떤 다른 이유로도 불이익을 준 적이 없으며 그마만큼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고 단원들에게 다가가셨다는 증거입니다. 지휘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없고 겉보기에 조용한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독재자처럼 권력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자신의 불만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고 오히려 몇몇 단원분들이 강압적인 분위기로 반대의견을 말하는 것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BBB 조사담당관님께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아니시기 때문에 DDD 선생님이 연주중 구자범 선생님을 보지 않은 것이 뭐 대단한 일인가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최소한 몇 십 명에서 백여명의 사람들이 한 무대에서 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연주를 위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모든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시에 집중하고 정확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무대 위에서, 그것도 곡 중 솔로부분에서 단원이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지 않고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연주를 망치겠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정서상 도저히 제대로 연주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잠시 쉬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그걸 그냥 묵과할 것 같으면 저희는 뭐하러 열심히 리허설을 합니까? 한 사람이 모든 걸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서 말입니다.
구자범 선생님께서는 항상 회식자리가 선생님과 단원들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지휘자와 단원이라는 관게를 벗어나 리허설 중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하고 서로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요. 평상시에 힘들었던 것이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들, 혹은 섭섭했던 것들, 좋았던 것들,, 웃고 떠들면서 그렇게 지난 2년간 서로 이해하고 가까워져왔습니다. 그건 구자범 선생님이 오신 이후의 경기필의 대외적인 평가나 연주 영상들을 비교해보시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회식에 오거나, 말거나, 혹은 회식자리에 있다가 중간에 나가거나, 중간에 들어오거나, 술을 마시거나, 말거나, 그 어떤 압박도 없고 그로인한 어떤 불이익도 없었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제 직장으로 다닌 오케스트라는 이곳이 처음이지만 대학교때부터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많은 지휘자들도 겪어봤습니다. 구자범 선생님처럼 실력있고 단원들을 아끼고 자기 사리사욕 챙길 줄 모르는 지휘자는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단 한번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단원들에게 피해준 적 없고 오히려 단원들을 위해서 본인에게 불리한 결정들을 내립니다. 100분에 이르는 교향곡을 암보로 지휘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철저한 건 말할 필요도 없구요. 지금 구자범 선생님께 불만이 있는 단원 대부분이 오케스트라에 오래 계셨던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오케스트라라는 단체의 속성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고 나이와 경험이 많으시기 때문에
저처럼 이 곳에 온지 얼마 안된 단원들은 그에 대항해서 목소리를 내기가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을 꼭 감안해서 공정하게 판단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해 익명성을 보장해주실 것을 아주 간절하게 바랍니다.